대안정비사업과 도시재생사업 진행 중지금 이 일대는 대안정비사업과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아파트를 짓는 부동산 개발 일색의 사업에서 지역 특성을 살린 정비사업으로 방향을 튼 대표적인 사례가 창신동 일대의 정비사업이다. 그리고 봉제산업을 주제로 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골목길에 2018년 문을 연 이음피움 봉제역사관도 그 성과 중 하나다. 한껏 멋을 낸 새 건물에 봉제작업실과 역사관, 카페까지 들어서 있다. 골목길을 걷다보면 벽에 이 일대 봉제산업의 대강을 정리한 안내판도 붙어 있다. 골목을 거리박물관으로 꾸며 곳곳에서 봉제 일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뉴타운 사업은 무산됐지만 마을 분위기가 새로워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차츰 정비되는 분위기지만 아직 봉제골목 곳곳에는 예전 난개발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가파르고 좁은 골목길, 오직 사람의 두 발로 지나야 하는 실핏줄 같은 길들이 있다. 열린 문 사이로 실밥을 뜯는 모습도 보이고, 뭔지 모를 작업에 바쁜 모습도 볼 수 있다. 가내공장 주인은 “옷 한 벌에 수백 사람의 손이 들어간다. 주머니 만드는 사람은 주머니만 만들고, 단춧구멍 뚫는 사람은 단춧구멍만 뚫는다. 그것도 옷 종류마다 처리하는 공장이 다 다르다”고 설명했다. 다 전문분야가 따로 있어서 한 공정을 마치면 그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 이 일대가 유기적으로 함께 움직인다고 했다.옷에 따라 다르지만 대강의 과정은 옷을 디자인하고 원단을 정해 설계하는 패턴, 그대로 천을 자르는 재단, 재단된 원단을 재봉틀로 이어 붙이는 재봉, 각종 부자재를 달고 주머니를 만드는 마무리, 완성된 옷을 다림질하고 실밥 등을 제거하는 완성의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일의 단계마다 공장의 위치와 일하는 시간대가 달라진다는 사실도 색다르다. 창신동 초입과 큰길가에는 주로 패턴 가게들이 보이고, 골목길로 접어들면 재단공장, 그 주변에 봉제공장들이 있고, 좀 더 깊은 곳에 마무리와 완성 공장들이 있었다.공정이 진행되는 시간에 따라 완성 공장들은 앞 공정이 다 끝난 후 일을 받아 늦은 오후부터 시작해 새벽까지 작업을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옷들이 새벽시장으로 나갔다. 현장에서는 아직도 미싱이며 ‘마도메’, ‘시아게’ 같은 일본말이 통용되고 있어 일하는 이들의 언어는 쉽게 알아듣기 힘들다.요새 경기는 어떻냐고 묻자 “한 3분의 1 정도로 줄어든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의류 바닥 분위기가 위축된 것은 사실인가 보다. 그런데도 골목마다 미싱사 하청 객공팀, 보조인력을 구하는 전단이 빼곡히 붙어 있다. 일이 줄어들어도 공정과 손을 줄일 수는 없고, 늘 일손이 들고 나는 것이 이 바닥 사정이란다. 숙녀복 전문이라는 공장 주인은 “사람마다 솜씨가 천차만별이다. 공장일도 늘었다가 줄었다가 대중이 없다. 디자인 하나가 터져 불티나게 팔리면 일도 밤낮 없이 바빠지고, 안 나가면 망하는 게 현실이다. 재단사는 가위에 자 하나 들고 떠돌고, 미싱사도 일 없으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이 여기 생리”라고 들려주었다. 공장 임대 안내판과 사람 구한다는 간판이 함께 붙어 있는 것이 봉제골목의 현실이었다.쉼 없이 들리는 재봉틀 소리에 숙연비탈길과 골목 사이사이를 원단이며 옷짐을 싣고 달리는 오토바이가 창신동의 또 다른 주인들이다. 제 키를 두 배쯤 넘긴 짐을 싣던 오토바이 짐꾼은 “여기서 시장으로, 또 만리동이나 용두동까지 공장으로 짐을 나른다. 거래처마다 시간 지켜 물건을 전해주는 게 생명”이라고 했다. 고정 거래처들이 있고 공정마다 옮겨야 해서 일은 많다고 한다. 수입을 묻자 “생각보다 많이, 벌만큼 번다”며 웃음으로 답했지만, 수없이 많은 공장들을 시간에 맞춰 벅찰 만큼 짐을 싣고 비탈과 골목 사이사이로 누벼야 하는 일은 겉보기에도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오토바이는 자주 망가지고, 급히 오가다 보면 딱지 끊는 일도 많으며, 한 번 다치면 몇 달을 누워 있어야 하니 적게 벌어서는 버틸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길이 좁고 비탈질수록 오토바이 일꾼이 더욱 빛났다. 일은 줄었지만 일손까지 줄일 수는 없어 창신동 일대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늘고 있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 없는 단순 일자리에 중국인과 네팔 등 동남아 일꾼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그들은 한 사람이 자리를 잡으면 친지들이 따라 들어온다고 했다. 게다가 창신동 일대 싼 방값도 이주노동자들을 불러들이는 요인이다. 중국 가게에서 물건을 사던 이는 “고시원에서 살 돈이면 살 만한 방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시장골목과 빨래방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창신동 비탈길을 한창 오르다 보면 낙산공원이 나온다. 잘 정비된 낙산공원에서 서울 장안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쉼 없이 살아가야 하는 비탈 마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정경이 펼쳐진다. 비탈을 오르던 피로는 정상의 풍광이 보상했다. 비탈에 선 나무들은 굽어 있고 힘겹게 뿌리를 내리는 법이다. 골을 거슬러 오르는 바람을 견뎌야 하고 위태로운 경사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을 지내온 봉제골목의 사람들도 그런 비탈길을 지나쳐 왔을 것이다. 경사진 골목에서 엿본 노동과 삶은 장엄하고 거룩했다. 창신동 봉제골목의 비탈진 길을 걸으면 쉼 없이 들리는 재봉틀 소리 앞에서 숙연해진다. 사는 일에 지칠 때 낙산 경사진 골목길을 한 번 더 걸어야겠다.<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